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12월호 기사입니다.
배가 항해를 마치고 항구에 닿듯,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올 한 해도 어느새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12월 한 달을 그냥 흘려보내기보단 하루 시간을 내 여행을 떠나는 건 어떨까. 여행자의 보폭 속에 쏙 들어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여행자의 보폭 속에 쏙 들어오는 소도시, 묵호를 찾아 해안로를 산책하며 고적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힐링의 순간을 담았다.
수수한 소도시
릴게임손오공 풍경이 주는 해방감
“여러분, 지금 왼쪽 창으로 너울성 파도가 출렁이는 동해 바다가 보입니다. 파도는 사람의 마음과 닯았다고 하죠. 승객 여러분들도 힘들었던 것들은 바다에 던져두시고, 돌아오는 기차에선 홀가분해지시길 바랍니다.”
직장인들이 한창 일하고 있을 평일 오후 1시 무렵, 느지막이 동해선
릴게임신천지 열차를 타고 강원 동해시 묵호동으로 향했다. 단잠에 빠져 꾸벅꾸벅 졸다, 승무원의 꿈결 같은 목소리에 마음이 일렁인다. 안내 음성이 끝나자 기차 창밖으로 푸른 풍경이 펼쳐졌다. 올 한 해 예상치 못했던 파도 같은 순간에 쓸려가지 않으려 숨죽이며 애쓴 나날들이 떠오른다. 차창 밖, 여행자의 마음을 흔드는 파도를 바라보며 묵호 여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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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2시간 30분을 달려 기차는 마침내 묵호역에서 멈췄다. 역사 밖을 나서자 향긋한 바다 내음이 항구도시에 도착했음을 실감케 했다. 1960년대까지 무연탄과 석탄을 실어 나르며 동해안 제1의 무역항으로 호황기를 누렸던 묵호의 옛 시절은 저물고, 빛바랜 항구도시의 풍경이 굴다리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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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문을 닫은 가게들과 유흥 주점, 낡은 간판들을 보고 누군가는 쇠퇴했다 말하지만,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은 소도시의 수수한 풍경은 대도시에서 온 여행객들에겐 묘한 해방감을 준다. 여기에 걸어서 하루 반나절이면 충분히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은 젊은 여행객들이 묵호를 찾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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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쁨으로 되찾은 일상의 활기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수변 공원 맞은편의 현지인 맛집, ‘동북횟집’으로 향했다. ‘물회가 맛있어 봤자지’ 하고 별 기대 없이 갔다가 감탄을 연발했다. 채 썬 오이, 배, 무에 가자미회가 담긴 단출한 강원도 스타일의 물회 한 그릇과 함께 찰진 좁쌀밥이 식탁 위에 올랐다. 밥을 말아 한 숟가락 입에 넣으니, 단맛과 새콤한 맛이 삼삼하게 섞인 육수가 일품이다.
수저를 놓을 새 없이 든든히 속을 채웠다. 뒤이어 방문한 찻집 ‘예심다도갤러리’에서도 작은 기쁨을 맞았다. 빈티지 가구와 소품들로 예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찻집에서 말차 만들기를 했다. 체험을 진행한 최영선 다도가를 따라 예법에 맞춰 다기를 옮기고, 말차 가루를 푼 물을 차선(대나무 솔)으로 휘저었다.
논골담길 벽화마을 전경.
어느새 말간 연둣빛 거품이 곱게 일었다. 다완을 양손으로 들고 마시니 맑고 순한 맛과 향에, 평소 가볍게 넘기던 차 한 잔이 나를 위한 오롯한 시간이 됐다. 이후 묵호 시내의 골목길을 돌며 미소 짓게 하는 ‘소확행’이 여러 번 있었다. 묵호항, 중앙시장, 갤러리 ‘바란’을 들르고, 기념품 숍 ‘끼룩상점’에선 묵호 풍경을 담은 엽서를, 여행 책방 ‘잔잔하게’에선 소설책을 두 권 샀다.
묵호에선 어딜 가도 한산해 행선지를 계획할 필요도,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취재 일정을 쓰고, 불안한 마음을 붙잡듯 휴대폰을 보고, 혹시나 잠을 뒤척여 다음 날 문제가 될까, 좋아하던 커피도 사양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점차 이곳에 마음이 기울었다.
1년 뒤 내게 쓰는 편지
이제 바다를 만날 시간. 바다 조망이 일품인 ‘논골담길’ 아래에 숲처럼 자라난 푸른 나무들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너울댔다. 바람이 해안 길로, 그 길이 파도 치는 바다로 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묵호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해안 관광지 ‘도째비(도깨비의 방언)골’에 다다르자 태평양의 웅의한 기상이 서린 검고 짙푸른 동해가 육중한 모습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이불솜처럼 희고 두꺼운 파도가 해풍을 이끌며, 바다 위에 설치된 ‘해랑전망대’ 아래로 거칠게 밀려들었다. 더 넓은 바다를 품 안에 담고 싶어 바닷바람을 등에 이고 ‘묵호등대’로 향했다. 등대 꼭대기로 오르자, 기념품 숍에서 봤던 엽서 속 묵호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산비탈 위로 알록달록한 지붕의 집들이 보이고 골목길 사이사이로 가로등 불이 하나둘 켜졌다.
동해와 묵호 사진으로 소품을 만드는 기념품 숍 ‘끼룩상점’.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삶도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던데, 논골담길을 바라보던 눈으로 올 한 해를 돌아봤다. 도시의 삭막한 일상에도 저 불빛만큼이나 밝게 빛나던 순간들이 하나둘 기억 속에 떠올랐다. 묵호등대 앞에 자리한 ‘느린 우체통’에 논골담길 불빛처럼 빛나는 순간이 내년에도 내 일상을 밝혀주길 소망하며 1년 뒤 나에게 편지를 부쳤다.
춤추듯 자유로운 파도를 맞으며
도째비골 언덕을 내려와 ‘까막바위’로 향하는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니, 손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주로 잡히는 어종은 1㎏당 4만 원 정도의 고급 어종 노래미이다. 밑밥 통에 노래미를 담고 흐뭇한 표정인 낚시꾼들 외에도 해안도로 인근엔 카페와 음식점들에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다.
카페에 들러 통창으로 바다도 한번 내다보고, 슬렁슬렁 사람 구경하며 20여 분을 걸어 도착한 ‘어달해변’. 저녁 7시가 넘어서자 하늘이 연분홍색의 파스텔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물도 거멓고, 까마귀도 많다고 이름 지어진 묵호(墨湖)에선 역시나 어둠이 내려앉는 순간이 가장 아름다웠다. 모래사장 위로 갈매기들은 잔잔하게 걸음을 옮기고, 파도 자락이 잘게 부서져 해변 위로 옅게 흩어졌다. 그 모습을 멀찍이 서서 바라보고 있는 내게 맨발로 해변을 걷던 아주머니가 말했다.
도째비골 언덕 아래에 자리한 ‘해랑전망대’.
“어여 신발 벗고 걸어봐요. 바닷물이 따뜻해요.”
그 말에 이끌려 나도 맨발로 해변을 따라 걸었다. 엎치락뒤치락 섞여 휘몰아치는 파도. 검은 바위들은 돌산이 되고, 하얀 포말은 운무가 되어 눈앞에서 꿈결 같은 비경을 만들었다. 마치 춤을 추듯 파도가 너울대자, 무릎까지 걷어 올린 바짓단도 파도에 속절없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 좋은 걸 왜 바라만 봤을까. 빈 항아리 같던 내 마음에 상쾌한 바닷물이 차오른다. 묵호에서 숨을 고르며 기분 좋은 일렁거림이 다시 마음에 인다.
글 이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