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비운병님의 바다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바다이야기 게임바다신2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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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반비운병 작성일25-12-03 02:56 조회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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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반비운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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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락처* | -- |
| 이메일 | uqmycwkl@naver.com |
| 분야* | |
| 예산* | 만원 |
| 세부내용 |
본문
한국의 아케이드 게임 시장은 상당히 작은 편 이죠. 아케이드 게임이란 오락실에서 돈을 내고 플레이 하는 게임이라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예전 학교 앞에서 100원 넣고 게임 하던 게임기 역시 아케이드 게임이죠.
아케이드 게임은 미국과 일본에서 많이 흥행했는데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일본에는 아케이드 게임 만을 개발하는 대형 회사가 다수 존재할 만큼 큰 규모의 시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케이드 게임을 생산하는 회사가 많지 않았고,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사실 한국에 아케이드 시장이 크지 않았던 건 2000년대 초반 이미 PC가 상용화 되기 시작하면서 스타크래프트 라는 게임이 대히트를 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굳이 게임을 하러 오락실을 갈 필요가 없었죠. 그래도 오락실 마니아들 덕에 한국 아케이드 시장도 간신히 숨은 쉬고 있었는데, 아케이드 시장을 박살 내버리는 사건이 터집니다.
바로 바다이야기 사건 이죠. 바다이야기는 일본의 파칭코 게임이라 볼 수 있는 사행성 게임 입니다. 게임물등급관리위원회가 생겨난 사건이기도 하고 박연차 게이트 뇌물 사건과 함께 그 당시 참여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2001년 한국에서는 경품성 상품권이 허용됩니다. 1년 뒤인 2002 한일 월드컵의 수혜를 받기 위해 관광업계가 강력하게 요구한 결과죠. 그 당시 잡음도 많고 걱정과 우려도 많았지만 월드컵이라는 행사 때문에 경품화가 허용됩니다. 더 나아가 상품권을 현금으로 환전 해 주는 곳도 생겨나면서 도박형 게임장이 생겨나기 시작하죠.
그래도 바다이야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도박형 게임장이 있다정도였는데에이원비즈대표 차용관이 바다이야기를 개발하면서 한국 어디를 가던 볼 수 있는 게임장 바다이야기가 탄생하게 됩니다. 차용관이 처음 만든 게임은 스크린경마였습니다. 경마 게임만 유통하는 자회사 까지 설립하며 사업을 펼쳤고 스크린경마 3위까지 올라서죠. 하지만 이건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스크린경마는 누가 봐도 도박이고, 여러명의 인생을 망치고 있었죠. 스크린경마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정부에서는 강력한 제재를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스크린경마는 종적을 감추게 됩니다. 당시 차용관은 외상으로 오락실 업주들에게 팔았던 스크린 경마 기계값을 못 받게 되었고 회사는 20억이 넘는 빚을 지고, 1년 넘게 직원들의 월급은 커녕 사채까지 쓰며 망하기 직전인 회사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2004년 차용관이 일본에 가서 대박 아이템을 가지고 오죠. 당시 일본에서는
오우미노모노가타리가 대박 행진을 치고 있습니다.오우미노모노가타리란 황금메달이
바다 아래로 떨어지면서 각종 바다 생물을 맞추면 점수가 올라가는 게임이었죠. 차용관은 한국에 오자마자오우미노모노가타리짝퉁 게임을 개발 했습니다.
직원들 모두 기대하지 않았고, 심지어 본인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죠. 그렇게 개발한 바다이야기가 대 히트를 칩니다. 오락실 사장들은돈을 먼저 주겠으니 제발 기계 좀 달라며 찾아왔고, 전국 어디를 가든 바다이야기 게임장이 보이기 시작하죠. 심지어 시골의 읍내까지 바다이야기 게임장은 지금의 치킨가게 보다 훨씬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바다이야기가 대박을 치자 비슷한 부류인 황금성, 야마토 게임 등 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화려한 간판과 썬팅으로 가려 놓은 창문은 트레이드 마크와 같았습니다. 이에 차용관은 회사를 확장하고 엄청난 돈을 쓸어담죠. 대략 4만 개가 넘는 게임기를 팔았고, 1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추정되고 직원수는 70명을 넘어섭니다.
이후 사행성 사업이라며 욕을 먹은 차용관은 온라인 게임 사업을 위해 인수할 회사를 찾고 다니죠. 이런 상황에 정부와 경찰은 뭘 하고 있던 걸까요? 뭘 할 수가 없는 상황 이였습니다. 왜냐하면 합법이었거든요. 앞서 말씀드린 경품성 상품권이 허용 되었다는 것. 일본의 파칭코를 아시는 분이라면 바로 이해되실 겁니다. 바다이야기는 기계에서 돈이 나오지 않았죠.
법적으로 허용된 상품권이나 혹은 라이터, 경품성 물건들이 나왔습니다. 상품권은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근처 교환소에 가면 현금으로 교환을 해주었죠. 현금이 나오지 않으니 도박이 아니였고, 게임기도 나라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은 합법적인 게임 이었습니다. 법적으로 걸리는 건 당연히 없었죠.
당연히 나라에서 재빨리 조취를 취했어야 하지만 게임의 허가를 내주는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바다이야기 업장은 대놓고 장사를 하며 당첨금액이 얼마다 대박이다 라는 현수막 까지 걸었습니다. 이미 모든 사람들이 바다이야기를 알고 언론에서 다루어 졌을때도 위원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앞으로 과도한 사행성을 조장하는 게임은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라고 하기는 했지만 이미 시중에 바다이야기 게임은 퍼진 상태 였습니다.
2004년 ~ 2005년 바다이야기는 급속도로 전국에 퍼져나갔습니다. 바다이야기를 처음 만든 차용관뿐만 아니라 게임장을 차린 사장들, 상품권을 환전 해 주는 사람들, 게다가 게임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LCD를 만드는 회사까지 엄청난 호황을 누립니다.
하지만 검찰이 바다이야기를 눈 여겨 보기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서울 중앙 지검이 제조사를 압수수색하기 시작했고, 게임장 업주가 바다이야기의 승률을 조작한다는 소문을 듣고 수사를 꾸렸죠. 이때 압수한 상품권의 금액만 9조였습니다. 바다이야기에 대한 말들로 언론이 난리가 나고 있을 때 인터넷에서는 한 가지 말이 떠돌았죠.
여당 당시 참여정부의 유력 인사 중 한명이 게임기를 만든 회사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유진룡 문화부 차과이 경질되었는데, 이게 바다이야기 허가를 반대해서 경질되었다는 소문도 돌죠. 이건 훗날 관계가 밝혀졌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미 언론과 야당은 난리가 난 상태였죠. 게다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 노지원이 근무했던 회사까지 불똥이 튑니다.
바다이야기 게임의 제작은지코프라임 이 담당했는데,지코프라임 은 코스닥에 상장되어 있던 회사인우전시트텍 을 인수해서 우회상장을 하려고 했죠. 노지원이 근무했던 회사가우전시스텍 이란 게 밝혀지면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옵니다. 후에 검찰 조사 결과로 상관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여론은 미친 듯이 끓어오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바다이야기는 잘 운영되었습니다. 불법이 아니었으니까요. 회사는 압수수색을 당했지만 업장들은 무사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게 있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까지 알려져 손님이 느는 현상까지 보였죠.
매일 신문에는 바다이야기와 관련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게임이 위원회를 통과 했는지 밝혀졌죠. 위원회에 근무하는 사람이 뇌물을 받은 것이 적발되었고, 위원회 예심의원 일부가 오락실 업주와 동업 관계 이다 등, 유착 관계가 드러납니다. 결과적으로 바다이야기 사건은 정치권 문제가 아니었고, 위원회의 문제임이 밝혀지게 되죠. 위원회 뿐만 아니라 문화부 국장은 물론 경찰까지 뇌물을 받은 죄로 잡혀 들어 갑니다.
2007년 검찰은 바다이야기 관련 153명이 처벌 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하며, 바다이야기 사태는 끝이 납니다. 바다이야기는 많은 여파를 남겼습니다. 영등위는 게임 심의 자격이 박탈되고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생겨났으며, 한국의 아케이드 게임판은 완전히 망해버리죠.
하지만 아직까지도 바다이야기와 같은 게임장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예 대놓고 장사하는 곳도 많습니다. 경찰이 이걸 단속하려면 환전 하는 순간을 잡아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냥 게임 하는 곳에 쳐들어간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겁니다. 일반 사람이 간다고 해 봤자 정상적인 게임을 하는 곳처럼 설명해주니 방법도 없죠. 주변에 사는 사람이 신고해도 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법의 허점인 것이죠.
바다이야기 사건으로 생겨난 게임물등급위원회도 문제가 많습니다. 얼마 전 집단 민원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죠. 정말 문제는 얼마 전 바다이야기를 빼다 박은 게임인바다신2라는 게임이 전체이용가로 심의를 통과했습니다. 심지어 경품까지 나오는 아케이드 게임이죠. 이걸 계기로 바다신2 게임 이외에 많은 도박류 아케이드 게임이 심의에 통과 된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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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reelnara.info
올해로 결혼 10년 차인 송주현 나은비 부부는 지난 7일 경기도 화성시 동탄 트레이더스에서 노숙인을 만나 식사를 대접하고 신발을 선물했다. 송씨가 노숙인과 대화하는 장면. 오른쪽 사진은 두 사람이 10년 전 결혼하면서 아프리카 우간다에 지은 학교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이다. 부부 제공
대형 마트에서 맨발로 들어온 노숙인을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왜 여기까지 들어왔을까?’ ‘경비원은 왜 내쫓는지 않을까’라는 부정적인 의문이 먼저 떠오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30대 부부는 초라한 행색의 걸인에게 바다이야기예시야마토게임 다가가 식사를 대접했고, 맨발의 처지가 마음에 걸렸는지 신발까지 사서 선물했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나눈 이 이야기가 온라인에 공개됐지만, ‘선행을 자랑하냐’는 비판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1000개가 넘는 응원의 댓글만 달렸는데요. 그 이유는 이 부부가 15년 전 연애 시절부터 노숙인과 독거노인에게 꾸준히 사랑을 전해온 남다른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골드몽게임 변하지 않은 초심 덕분에 많은 이들이 의심 없이 이 부부의 선행에 순수한 감동한 겁니다.
주인공은 경기도 화성 동탄에서 작은교회를 이끄는 송주현(37) 나은비(34) 목사 부부입니다. 이들의 따뜻한 이야기는 지난 7일 나 사모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뒤 현재까지 314만명이 지켜봤고, 4만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보통의 금요 야마토통기계 일처럼 이날 세 딸과 함께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금요 기도회를 인도하기 위해 교회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근처 대형 마트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리던 중 서서 먹는 테이블에 허름한 차림의 노숙인이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50대쯤 돼 보이는 그 노숙인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정신이 온전치 못한 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다소 체리마스터모바일 위험해 보이기도 했기에 주변 사람들은 경계했고, 마트 경비원도 그의 행동을 예의주시했다고 하죠. 날씨가 부쩍 쌀쌀해진 날이었는데 그 노숙인은 맨발로 서 있었습니다. 나 사모는 차가운 바닥 위에 신발도 없이 선 노숙인의 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고 당시를 회상하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습니다.
“그 순간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사이다쿨접속방법 ‘신발이랑 양말 사드리자’ 언제나처럼 통하는 그 순간. 남편은 용기를 내어 다가가 말씀드렸다. ‘아버지, 식사는 하셨어요? 쌀국수 한 그릇 드실래요? 발 치수는 어떻게 되세요?’
무표정이셨던 아버지는 활짝 웃으시며 발 치수를 말씀해주시고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남편은 신발과 양말을 사러 뛰어 들어가고, 나는 쌀국수 한 그릇을 얼른 사서 돌아왔다. 이럴 땐, 우리 부부는 정말 ‘일심동체’다!”
이 글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중에는 “두 분을 연애 시절부터 페이스북에서 지켜봐 왔는데 여전히 천국 같은 가정을 이루고 계시네요. 진심으로 존경합니다”라는 식의 후기가 적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부부는 연애 시절부터 꾸준히 남다른 이웃 사랑을 실천해온 커플이었습니다.
지난 7일 마트에서 만난 맨발의 노숙인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송주현 나은비 부부 제공
부부는 결혼 자금을 아껴 아프리카 우간다에 학교를 세웠습니다. 누구나 다 하는 결혼 스튜디오 촬영을 생략하고 무료로 빌린 대학 강당에서 결혼식을 올려 비용을 절감하고, 축의금에 온라인 모금을 더 해 모은 3000만원이었습니다. 부산 고신대에서 함께 공부하다가 우간다로 돌아간 유학생 친구를 통해 학교 건립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이 학교엔 매년 200명 정도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송주현 나은비 부부가 2016년 6월 우간다의 학교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이다. 부부는 2015년 11월 결혼식을 올리면서 아낀 비용 등으로 이 학교를 세웠고, 이듬해 2월 학교가 개교했다. 부부 제공
송 목사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교 설립 후 지금까지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송 목사가 집회나 강연 등으로 얻은 수익, 아내인 나 사모가 운영하는 의류 판매 사업 등으로 재정을 채웠다고 하는데요. 몇 해 전부터는 일반 후원금도 연결해 도움을 이어가고, 그의 개척교회에서도 지난 8월 단기선교를 다녀오는 등 현지와 교류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송주현 나은비 부부가 2015년 결혼을 준비하면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셀프 촬영을 하는 모습. 부부 제공
송 목사 커플의 선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부산에서 독거노인과 노숙인을 돕기 위해 비영리단체 ‘나눔 커뮤니티’를 설립해 7년 가까이 봉사했습니다. 송 목사는 지난 8월 출간한 자서전 ‘성공이 아니라 성경입니다’(토기장이)를 통해 그동안의 여정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들 삶의 방식은 2023년 4월 설립한 ‘우리는교회’ 성도들과 함께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학생에서 전도사, 목회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본 당시 중고등학생들은 이제 대학생과 직장인이 돼 교회를 함께 지켜가고 있습니다. 우리는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필리핀에 학교를 건립해 후원하고 있습니다. 또 두 달에 한 번은 주일 예배 대신 다문화 가정이나 지하철역 노숙인 등 어려운 이웃을 직접 찾아가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한해의 감사를 기억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의미를 담은 지난 16일 추수 감사 주일에도 교회의 나눔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 일이 있었습니다. 송 목사의 대학 동기인 다른 교회의 사모님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암 투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요, 그를 돕기 위해 하루 만에 1400만 원이 넘는 금액이 모였습니다.
송주현 목사가 이끄는 우리는교회의 성도들이 봉사하는 모습. 송 목사 제공
“80명밖에 안 되는 작은 교회이고, 성도님들 대부분이 20~30대여서 경제적으로 크게 여유 있는 상황도 아니거든요. 이렇게 큰 금액이 모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가치 있는 일에 기꺼이 마음을 나눠주신 성도님들에게 참 감사한 마음뿐입니다.”(송 목사)
울고 있는 이웃과 함께 울 줄 아는 이 교회의 후원 소식이 알려진 뒤 온라인을 통해 1000만원 가량이 더 모금됐다고 합니다. 송 목사는 “동기인 사모님에게 깜짝 방문해 마음을 전달했다”며 “병환뿐 아니라 주변 상황이 정말 어렵지만 ‘함께 손잡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힘이 난다’는 말에 저 역시 울컥했다”고 전했습니다. 송 목사가 주변의 선행을 SNS에 올리는 이유는 단 하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좋은 일을 했으니 칭찬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이 글을 보고 더 많은 사람이 주변에 사랑을 나누고 베풀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송주현 나은비 부부가 성도들과 함께 노숙인 봉사를 하는 장면. 부부 제공
송주현씨가 20대 시절 노숙인 봉사를 하는 장면. 송씨 제공
대형 마트에서 맨발의 노숙인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눈 뒤 나 사모는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이런 감사 기도를 드리며 왈칵 눈물이 쏟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마트에서 그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신발을 신겨 드리고, 식사를 챙겨드릴 수 있어서 감사해요. 다음에도 소외된 이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해주시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그날따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난 뒤 송 목사에게 아차 싶은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11월 7일은 바로 두 사람의 10주년 결혼기념이었던 것입니다. 다음 날 지방 집회에서 강연하던 중 문득 결혼기념일을 지나쳐 버린 일이 떠올랐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역에서 꽃다발을 산 송 목사는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건네며 특별했던 기념일을 이렇게 추억했습니다.
“우리 어제가 결혼 10주년이다. 니 알았나? 이 중요한 날 일정도 등록하고 알람도 맞췄었는데 교회 일에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깜빡하고 잊어버렸네. 그런데 이 중요한 날은 잊고 지나갔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는 노숙인 아버지를 향한 사랑의 나눔과 섬김을 잊지 않았더라. 오늘 문득 결혼 10주년을 잊고 지나간 것에 대해 깜짝 놀랐다가 한편으론 결혼 10주년을 참 우리스럽게 보냈다는 생각에 괜한 미소가 지어지더라. 한결같이 사는 것 같아 그저 감사하더라.
은비야 내가 가진 능력도 없고 돈도 없지만, 너를 향한 사랑과 고마움 미안함까지 세계에서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거 알제? 나랑 결혼해줘서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하는 우리 세 딸 엄마가 되어줘서 그리고 우리교회 사모가 되어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사랑해. ”
10주년 결혼기념일을 깜박 잊은 다음 날 송주현씨가 아내 나은비씨에게 쓴 편지. 부부 제공
대학 캠퍼스에서 만나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2010년부터 15년이 흘러 이제는 세 아이의 부모가 된 두 사람의 모습은 달라졌겠지만,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향한 사랑의 깊이는 더욱 깊어진 것 같습니다. 한결같이 삶 속에서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어 온 두 사람의 결혼기념일을, 비록 늦었지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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