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을 모아둔 경기 용인시 자택의 진열장 앞에 선 이재열 경북대 명예교수. 이 교수는 “음식 문화를 제대로 얘기하려면 맛뿐 아니라 음식의 보관과 온도 유지 등에 필수적인 그릇까지도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용인=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전통 의식주엔 우리가 살아온 지혜가 담겨 있어요. (요즘 K컬처가 주목받는 건) 이제 와 그걸 새롭게 느끼는 거죠. 원래 아주 무궁무진합니다.”최근 출간된 신간 ‘살림의 과학’(사이언스북스)은 독특한 책이다. 요즘 해외에서도 관심 높은 ‘K헤리티지(문화유산)’를 “가상의 옛집을
바다이야기다운로드 둘러보는 시간 여행자” 콘셉트로 구성했다. 부엌이나 안방, 대청, 사랑채, 마당 등을 집주인 몰래 살펴보는 형식이다. 책을 집필한 이재열 경북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75)는 전공이 ‘미생물학’이다. 문화유산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2009년에도 ‘담장 속의 과학’(사이언스북스)이란 관련 서적을 냈다. 지난달 26일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한
바다이야기예시 그는 “옛 선조들의 ‘살림의 과학’을 좇다 보면, 더 아름답고 멋진 삶을 살기 위해 애써 온 옛사람들의 노력과 꿈을 읽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간은 특히 전통 의식주에 담긴 과학에 집중한다. 이를테면 ‘조선 양반들은 추운 겨울에도 구멍이 송송 뚫린 갓을 썼는데, 보온은 어떻게 했을까’ 같은 궁금증에 대한 답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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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가구인 책반닫이. 사이언스북스 제공
해주반. 사이언스북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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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탕건. 사이언스북스 제공
선비들은 위가 트인 방한모를 쓰고, 그 위에 갓을 올려 쓴 뒤 끈으로 묶어 방한을 하며 의관도 정제했다. 이처럼 꼭대기가 열린 모자는 중국과도 차별화되는 조선의 고유한 의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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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살림의 과학은 오늘날에도 적잖은 의미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이 뚫려 ‘숨을 쉬는’ 전통 옹기가 대표적이다. 옹기를 필터로 사용해 제3세계에 보급할 정수기를 만들 수 있는지 검토된다고 한다.
과학자인 이 교수가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진 건 1978년 28세 때였다. 서울대 농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유학길에 올라 박사 과정 지도교수를 찾아뵌 자리였다. 악수를 나눈 뒤 교수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뜻밖이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고려 자기에 대해 얘기해 줄래?”
“알고 보니 교수님이 취미로 동양 미술사를 공부하셨더라고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히려 제가 한국에 대해 너무 모르는 거예요. 이른바 정체성이 없었던 거죠. 독일어로 지도교수를 ‘독토어파터(Doktorvater)’라고 하는데, 아버지처럼 많은 영향을 주셨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 교수는 한국으로 돌아와 역사와 고미술에 빠져들었다. 경북대 재직 시절에도 틈만 나면 전국 고미술상을 찾아다니며 고대 토기나 그릇받침, 항아리, 단지를 수집했다. 30년 넘게 발품을 팔다 보니 준(準)전문가가 됐다. 그렇게 수십 년간 수집한 백제·신라·가야 등 토기 157점을 2013년 한성백제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은 이를 바탕으로 2021년 특별전 ‘흙으로 만든 그릇, 토기’를 열기도 했다.
그의 서재도 작은 전시관을 방불케 했다. 3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 토기가 진열장에 놓여 있었다. 뽁뽁이와 노끈으로 단단히 감싼, 가야의 손잡이가 있는 잔들도 칸마다 들어 있었다. “이런 건 이삿짐센터도 취급을 안 해요. 전부 제가 짐을 싸고 풀어요. 지난해 서울에서 이사 올 때도 하나도 안 깨졌어요. 보고 있으면 즐거워요. 책 읽는 것과 똑같아요.”
인터넷과 인공지능(AI)으로 즉각 답을 얻는 시대. 하지만 이 교수는 ‘맥락’을 탐구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강조했다. “자연 속에서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려는 우리 살림살이 속엔 자연을 닮아 가려는 아름다운 마음이 깃들어 있어요. 부족한 살림에도 넉넉한 마음을 누릴 수 있는 지혜를 추구해 온 게 우리 전통문화의 특징이라고 봅니다.”
용인=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기자 admin@seastorygame.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