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변영근 작가 어둠이 짙게 깔린 복도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상에서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이곳의 분위기는 처음에는 두려움을 안겼지만, 곧 익숙해졌다. 복도의 끝을 향해 나아가면서 류는 이미 바깥이 어두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는 점점 잦아들다가 말다가 했다. 박씨와 류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긴장한 상태로 복도를 걸어갔다. “들려?” 박씨가 묻자, 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까지만 보고 올게.” 박씨가 복도의 끝을 바 릴게임 라보았다. 류는 가려는 박씨를 붙잡고 입모양으로 “그냥 가자”고 했다. “왜 그래?” 류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이라고 했다. 표정이 심각했다. “여기 뭔가 이상해. 너무 추워.” 조금 전까지 밖은 습하고 더웠다. 비가 금방이라도 올 것처럼 공기는 무거웠고 햇볕은 뜨거웠다. 사람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여기는 시원하다. 환풍기 사이로 먼지와 릴게임모바일 어슴푸레한 빛이 복도에 줄기를 만들었다. 하나, 둘, 셋, 넷…총 여덟 개의 환풍기에서는 먼지와 함께 빛이 새어 나왔고, 어디선가 기계음이 낮게 울리고 있었다. 아니 복도를 이렇게 시원하게 해두는 이유가 뭐지. 꼭 냉장고 같네. 류가 중얼거리자 이번에는 박씨가 손을 입에 대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작게 말해도 다 들리잖아. 조용히 좀 해봐.” 그게 류였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다. 류의 목소리는 류가 가진 단 하나의 재능이었다. 크게 말하지도 않는데 교실의 저쪽 끝에서도 아주 정확하게 들렸다. 특히 네모난 공간일수록 더욱 그랬다. 사방이 막혀있는 곳에서 류의 목소리는 그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귓가에 직접 꽂혔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갔을 때 류가 노래를 따라 부르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조용해졌 사이다릴게임 다. 가수는 놀라서 웃다가 곧 곤란한 표정으로 류를 봤다. 그 이후 류는 실내 공간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류의 침묵은 주로 오해를 샀고 가끔 호감을 얻었다. 특히 류가 말을 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에 크게 감명받는 남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보내는 호감이란 습자지처럼 얇아서 모텔방에서조차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너를 견딜 수 없다며 릴게임하는법 떠나기도 했고, 버스 안에서 정류장을 지나치려고 할 때 ‘기사님 내려주세요’라고 말한 목소리가 깼다는 이유로 이별을 고한 이도 있었다. 류가 집회를 다니기 시작한 건 그즈음이었다. 광장에 나간 건 우연이었다. 뉴스 화면 속에서 이상한 이름의 깃발들을 봤다. “혼나본 사람 깃발 연합”이 류의 눈에 들었다. 시끄럽다고 혼나본 사람이라는 손피켓을 들고 나가자 사람들은 류에게 구호를 선창하라고 했다. 류가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넓고 트인 곳에서 류의 목소리는 공기와 만나 적당히 공글려져서 더욱 듣기 좋게 퍼졌다. 류는 광장이 좋았다. 큰 규모의 광장일수록 류의 목소리는 쓸모가 있었다. 작은 규모의 시위에도 참석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광장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 묻혀 같은 구호를 외칠 때와 소수에 속해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소리를 낼 때는 달랐다. 거리의 사람들은 작은 시위대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는 티를 온몸으로 내며 종종걸음으로 멀어졌다. 류의 직업은 호객꾼이다. 어디 공장이 망하거나 브랜드가 없어지거나 개성공단에서 철수한 업체 등에서 떼어온 물건들을 쌓아놓고 ‘사장님이 드디어 미쳤어요’라고 붙여놓은 폐업 매장에서 며칠 알바를 하고 나니 점주가 웃돈을 줘가며 붙잡았다. 천직이라고들 했다. 류는 확성기 대신에 자신의 목소리를 이용해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럴수록 류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물건을 파는 것에 자괴감을 느꼈다. 같이 일하는 박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물건더미에서 물건을 가져와 관찰했다. 때수건에 살짝 물을 묻혀 문질러보기도 하고, 염색 상태를 체크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흰 가제수건도 있었다. 박씨는 류의 목소리조차도 마치 자신이 몰두하는 물건처럼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궁금해했다. 박씨는 틈날 때마다 산으로 바다로 강으로 저수지로 다니며 류의 목소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실험했다. 그래도 실내로 들어가진 않았다. 박씨가 같이 일하는 건물 위쪽에서 어떤 소리가 들린다고 말하기 전까진. “저기 들려?” 류는 고개를 젖히고 손가락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하얀색 타일 외장의 4층 건물. 폐업 세일을 365일 하는 1층에서 일하면서도 위층을 올려다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1층 가게 실내에 화장실이 있어서 계단을 올라갈 일도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곳은 막혀있었다. 바깥에 2층으로 직접 올라가는 외부 계단이 있어서 드나드는 사람들과 마주칠 일도 없었다. 가끔 어울리지 않는 검은 세단이 건물 뒤 주차장에 세워지면 이 건물에 마사지숍이 있다는 게 생각나는 정도였다. ‘저런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일부러 찾을 정도면 마사지를 잘하나?’하고 스쳐 지나가듯 생각했을 뿐이다. 이 4층짜리 건물의 2층부터 4층까지 쓸 정도의 규모이긴 했다. 창문이 한 층에 8개씩 있으니까 총 24개나 되었다. 하지만 이 건물 자체가 고급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각 방 창문마다 연식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소형 에어컨 실외기와 환풍기가 함께 달려있었는데 창문이 열리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바로 그 실외기와 환풍기 소리가 갑자기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세상이 다 조용해진 것 같았다. 그 틈 사이로 그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점주는 여름휴가를 갔고 사람들이 길에 잘 안 다닐 정도로 덥고 습한 날씨라 호객을 할 손님도 없었다. 이 정도로 손님이 없다면 며칠 점포 문을 닫아도 좋을 텐데 물건 사입해 오는 기준이 며칠이나 매장에 까는지가 조건이어서 열어두어야 한다고 했다. 박씨는 어차피 지나가는 손님도 없는 김에 잠깐 문을 닫고 올라갔다 오자고 했다. 2층 외부계단이 아니라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하더니 박씨는 손쉽게 문을 땄다. 박씨의 과거를 궁금해할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그냥 호기심이 많은 거야. 나 이상한 사람 아니고.” 류가 빤히 쳐다보자 박씨가 머쓱하게 답했다. 계단을 올라 2층 복도로 진입하자 기계음 같기도 하고 비명 같기도 한 소리들은 더 선명해졌고 이상할 정도로 추웠다. 2층에 올라가자 한쪽에는 문이, 다른 한쪽에는 창문이 있었다. 복도에는 따로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다. 바깥에서 창문으로 보였던 건 방이 아니라 복도에 달려있었다. 에어컨 실외기의 호스가 각 방의 출입문 위쪽 구멍으로 연결되어 있어 바깥에서의 시선을 완전히 차단한 구조였다. 가장 끝에 있는 실외기만 어떤 방에도 연결되지 않은 채 돌아가고 있었다. 복도만 시원한 이유였다. 그때였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방 안의 열기가 차가운 복도의 공기와 섞였다. 마치 그것을 신호탄으로 삼은 듯, 몇 개 방의 문도 차례로 열렸다. 두 번째 문 안에서 누군가 말했다. “씨발 더워 죽겠네” “야, 조용히 안 해. 씹 다 되어가는데.” 그걸 시작으로 순식간에 조용하던 복도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각 방들에서 나오는 소음은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대부분 화와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다. 순간, 첫 번째 방의 문이 열리면서 머리카락을 쭈뼛하게 만드는 미소 속에 한 남자가 상의를 벗은 채 나타났다. 상반신은 피투성이와 흉터자국처럼 보이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든 채 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들 오셨나?” 류는 대답 없이 남자를 쳐다봤다. 둘 사이의 긴장감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느껴졌다. 그사이 박씨와 류는 열린 문 안의 풍경을 빠르게 훑었다. 전화기, 헤드폰, 컴퓨터 그리고 널브러져 있는 먹다 남은 음식들…무엇보다도 화면에 떠있는 사진들과 채팅창이 보였다.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은 박씨였지만 박씨는 몰라도 여자인 류는 아는 세계였다. 주변에서도 흔히 들어왔던 일들. 사진, 유포, 협박 그런 얘기들. 더위 먹은 이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류는 소리를 지르기로 결심했다. 실내 공간에서는 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몰랐던 일이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었지만 아무도 소리도 듣지 못했다면 그 소리를 전달하는 건 류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얀색 타일로 덮인 건물 안에서 류의 목소리는 모든 벽을 만나서 점점 더 크게 울려퍼졌다. 바깥의 사람들은 너무 공명이 큰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서 건물이 소리를 내는 줄 알았다고 했다. 신고정신이 투철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수십 건의 신고를 했고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며칠 동안 뉴스에서 소식이 전해졌다. 휴대폰을 들고 있던 상반신을 탈의한 남자는 폐쇄된 마사지업소를 인수해 지인능욕, 성착취, 몸캠 피싱 등 주위에 말할 수 없는 범죄 이력으로 빨간 줄이 그어진 미성년의 10대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인생역전의 기회라며 또 다른 범죄조직을 만드는 중이었다고 한다. 경찰에 의하면 1층의 폐업상점에서 호객을 하던 류의 목소리가 이들의 영업을 꽤나 방해해서 마침 이사를 준비 중이었다고 한다. 이건 박씨가 전해준 이야기다. 류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목소리가 싫지 않았다. 광장 이후 처음이었다.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갖고 서로를 구하는 이야기 ■ 작가의 말 소설 속 ‘목소리가 큰 류’는 어딘가 모르게 ‘목소리가 큰 여자들’로 통칭되는 현실 세계의 여성들을 떠올리게 한다. 소위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 그러나 “시끄럽다” “불편하다”는 세간의 평가 속에서 점차 입을 다물게 된 여성들 말이다. 여성학자인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류와 같은 여성들이 침묵하게 된 것은 사람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결국 그들이 ‘광장’에서 자기 목소리가 가진 힘을 깨닫게 되면서 달라질 수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류는 광장에서 열린 각종 시위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큰 목소리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광장의 정치’는 결국 여성을 옥죄는 현실을 바꾸지 못했고 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소장은 “그럼에도 목소리의 힘을 경험했던 류이기에, 목소리가 필요한 순간(디지털 성범죄 목격)이 오자 큰소리를 지를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소장은 “그렇게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가지고 또 이를 통해 서로를 구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소장은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여성 의제를 꾸준히 다뤄왔고 이와 관련된 저서도 다수 집필했다. 사회비평서로는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폭주하는 남성성’(공저) 등이 있고 소설로는 ‘수신인도 발신인도 아닌 씨씨’를 펴냈다. 인지현 기자